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니 그윈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학창 시절에 야구와 [[농구]]를 병행했다고 한다. 이미 고등학생 때 지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손꼽혔고,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재학 시절에는 실제로 NBA 구단들이 그의 게임 리딩 능력을 눈여겨보며 ~~매의 눈~~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. 실제로 1981년 [[NBA]] 드래프트에서 [[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|샌디에이고 클리퍼스]]가 그윈을 지명하기도 했다.[* 단, 그윈이 야구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클리퍼스는 가장 마지막 라운드에서(10라운드 210순위) 그윈을 지명했으며 사실상 의례적 절차인 것으로 볼 수 있다. 요즘의 NBA 드래프트는 2라운드까지만 진행되지만 80년대에는 10라운드까지도 있었다. 물론 1,2 라운드 외의 지명선수들이 NBA에서 실제로 뛴 경우는 거의 없었다. 그리고 [[시카고 불스]]도 [[마이클 조던]]을 지명했던 1984년 드래프트 당시 10라운드에서 올림픽 육상 100m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칼 루이스를 지명했던 바 있다. 물론 칼 루이스 역시 당연하게도 불스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.] 아들인 [[토니 그윈 주니어]]는 2006년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[[밀워키 브루어스]]-샌디에이고-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]]-[[필라델피아 필리스]]를 거치고 [[2015년]]을 끝으로 은퇴하였다. 아버지에 한참 못 미치는 재능으로 마이너 오락가락하는 정도의 백업 외야수에 그쳤다.[* 아버지에 비해서는 한참 못 미쳤지만, 이 사람도 메이저 8년 뛰면서 통산 연봉은 600만 달러로 그럭저럭 벌었다.] [[2014년]] 부친상 때는 파드리스 뿐만 아니라 전 메이저리그에 걸쳐 추모 분위기가 있었던 덕에 복귀 타석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다. 현재는 [[샌디에이고 파드리스]] 구단의 라디오 방송을 담당하면서 구단 주관 방송사인 [[Bally Sports|Bally Sports San Diego]]의 해설위원을 담당하고 있다. 특히 부친과 목소리가 거의 똑같은 수준이라 반가워하는 사람이 많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